<눈 오는 2클러스터 발코니>

1. 글을 쓰게 된 계기

안녕하세요 (구)카뎃 seshin입니다!

저는 개발보다 교육방식에 흥미를 느껴

42에 입학을 하게 되었는데요,

혁신교육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는

교수 없이 자율성과 동료 학습만으로 이뤄진

커리큘럼이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실제로 42에서 1년 반 동안 공부를 하면서

기존 교육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의미있는 교육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제가 느꼈던 42교육의 가치를

늦게나마 공유해봅니다.

2. 42교육의 가치

2.1 무지한 스승이 유능한 학생을 만든다!

무지한 스승이 유능한 학생을 만든다.

자크 랑시에르

제가 좋아하는 문구인데요

스승이 무지할수록 반대로 학생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범위가 넓어지니 더 크게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기존 교육에는 기본적으로 유능한 스승이 있습니다.

유능한 스승은 답을 헤매는 학생에게

“몇 페이지 어디를 보면 답을 알 수 있어”라고

알려줍니다.

또 촘촘하게 짜인 교육과정은

수업마다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안내합니다.

이런 교육에 익숙해지면

불확실하고 모호한 상황에 놓일 때,

“뭘 알려줘야 하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해?”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누군가가 필요한 정보를 가져 줄 때까지 기다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42는 스승이 무지한 것을 넘어

스승이 없습니다.

어떻게 과제를 풀어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평가를 진행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이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고,

이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지?

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이처럼 42는 의도적으로 무능한,

모호하고 불확실한 환경을 제공하고

학생이 그만큼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2.2 삶은 불공평하다!

Life is unfair

42의 슬로건처럼 쓰이는 문구입니다.

42는 삶이 불공평할 수 있고

나에게 유리하지 않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42의 모든 프로젝트는 동료평가를 통해 pass와 fail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평가 15분 전까지

어떤 평가자에게 평가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평가자의 지식, 성향, 기분에 따라

프로그램이 잘 동작하더라도 fail을 받을 수 있고

부족하더라도 pass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불공평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우연과 운,

개인의 주관 등 불공평해 보이는 것에 따라 흘러갑니다.

그 안에서

“나한테만 왜 이래!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라고 환경을 탓한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Life is unfair”를 인정하고 나면

이미 일어난 상황을 비관하고 우울해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됩니다.

제 경험을 예로 들어보면,

42시스템 문제로 인해 평가 반영이 안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평가를 모두 받고 결과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에서 서버가 터진 것이죠.

억울하고, 다시 평가를 받아야한다는 생각에 짜증도 났습니다.

그때 “Life is unfair”을 떠올렸고

“그래, 이런 일은 언제든 나에게 일어날 수 있어.

그래서 내가 해야하는게 뭐지?”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2.3 정답은 없다! 정당성만 있을 뿐

42입학시험(라피신) 때의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막막함에 앞으로 척척 나아가는 동료에게

“문제를 보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길이 딱 보여요?” 라고 물었습니다.

동료는 여기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라며 저를 답답해 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 만해도 저는 문제를 푸는데 정해진 프로세스가 있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대부분의 평가는

다섯가지 선택지에서 정답을 골라야 하는 5지선다이거나

주관식이어도 어느 정도 명확히 정답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러나 42에서는 문제 해결이라는 목표와

대략의 방향성만 있을 뿐, 문제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부터 문제의 범위, 해결 방법 등은

고민과 선택, 그리고 설득의 영역이었습니다.

동료들과 왜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였는지,

왜 코드를 이렇게 작성하였는지 등에 대해 토론하며

내가 선택한 답의 근거와 정당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이때 배웠던 “정답은 없고 정당성만 있다”라는 태도는

실제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르는 분야의 일을 급하게 해야 할 때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아니면 어떡하지” 라는 저항이 잠시 일어나지만

곧 “내가 또 정답을 찾고 있었구나,

정답은 없고 정당함만 만들어 나가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일을 시도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글을 쓰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경험한 것들이 누군가에는 정답이 아닐 수 있으나

내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동료 카뎃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글을 고치며 정당성을 찾아가는 것이죠.

3. 마치며

기존 교육과 사회에는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친절한 교육만 받다가

그대로 불친절한 사회를 마주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42는 사회로 나아가기 전

미리 현실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기관입니다.

42가 친절한 교육과 불친절한 사회 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추가로 요새 42 입학시험인 라피신을 대비하는 학원이 여럿 생겼다고 합니다.

42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배울 수 있는 게 많은 교육과정입니다.

미리 경험하고 오기보다는, 막막함 속에서 동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소중한 기회를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