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 섬, 노도로 향하는 작은 배 / @jwon

지난 8월 말,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전에도 코로나 때문에 클러스터에 나오지 못했던 적이 있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1차 확산 때는 카페를 떠돌면서라도 공부했는데, 2차 확산은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꼼짝없이 집에만 있게 됐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되면서 카페에서 머물 수 없게 됐어요.

‘이렇게 지낼 바엔 코로나가 없는 지역에서 한달살기를 해야겠다.’ 집에서 작업을 못 하는 편인 저는 수도권을 벗어나 환기하며 코딩을 할까 싶었습니다. 여러 지역의 한달살기를 검색하고 있었던 이 때, 아주 시기적절하게도 슬랙에 ‘IT 종사자를 대상으로 남해 한달살기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공유해주신 @nkang님 감사해요!)

무려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준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없는 남해에서 아침과 저녁을 제공받으며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코딩을 할 수 있다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같이 참여한 42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건이 너무 좋은데 무료라서 나중에 새우잡이 배 타는 거 아닌가 걱정했다네요😂 (무료였던 이유는 남해군의 지원을 받는 사업이라서였어요. 새로운 청년 유입 정책을 실험하는 중이었습니다.)

다들 코로나 때문에 답답했는지, 42서울에서 이 프로그램에 6명(@jujeong @taekkim @ jinbkim @myoh @jwon @yechoi)이 지원했습니다. 전체 참여인원의 절반 정도가 42 사람들로 채워졌어요. 그렇게 8월의 마지막 날, 42 사람들과 함께 남해로 떠났습니다.

한달살기 시작 … 42 남해 클러스터 조성

한달살기 숙소 남구체험휴양마을(시크릿바다정원) / @jwon

숙식 시설과 코워킹 공간 모두 마련된 곳에서 한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남해 남구면 네 개 마을이 공동으로 조성한 ‘남구체험휴양마을(시크릿바다정원)’이 숙소입니다. 2층의 숙박시설에선 3~4명끼리 방을 함께 쓰고, 1층의 강당이나 사무실, 카페에선 각자 원하는 시간에 작업했습니다. 코워킹 스페이스로 설계된 공간은 아니었지만, 테이블, 의자, 에어컨, 콘센트, 커피까지 필요한 건 다 있었어요.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뿌듯해하는 @jwon과 @jinbkim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바로 클러스터(!) 조성입니다. 친구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신나서 노트북부터 펼쳤어요. 각자 가져온 노트북, 거치대, 키보드를 세팅해서 학습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클러스터와 비슷하게 지그재그 모양으로✌

첫 주에는 자의 반 타의 반 이곳에서 코딩만 했습니다. 태풍이 와서 밖을 못 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서울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조심한다는 취지로 외출을 자제했어요.

이 기간에 저는 함께 내려온 @jwon과 minishell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처음으로 서브젝트에 명시된 기간보다 빠르게 프로젝트를 끝냈어요. 코딩만 집중적으로 하기도 했지만, 함께 온 @jinbkim @jujeong님이 minishell 과제를 진행 중이거나 마친 상황이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또 한참을 헤맸겠죠? 역시 모여야 공부가 잘되는 것 같아요!

개발자 여럿이 모이니 개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오갔습니다. ‘오픈소스 기여하기’ ‘기술 수명과 트랜드 파악하기’ 등을 주제로 자체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어요. 개발 경험이 많은 분들이 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니, 공부하는 입장에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생활코딩 운영자인 이숙번님께서 찾아와 세미나를 열어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숙번님은 이번 IT 종사자 한달살기 공동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까진 남해에서, 최근엔 통영에서 원격근무하며 개발자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 입장에서 ‘시골에서 개발자 생활을 하는 법’ , ‘시골 생활의 장단점’ 등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최근에 제작한 생활코딩 머신러닝 강의와 관련해서도 지식을 나눠주셨습니다.

새 취미, 유유자적 낚시와 등산

각자 남해에서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취미도 만들었습니다. @jujeong과 @taekkim이 낚싯대를 장만한 이후로, 사람들은 새벽이고 밤이고 낚시를 나갔습니다. 아침에 식당에 밥을 먹으러 내려오면,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부녀회장 어머니께서 사람들이 새벽에 잡아온 물고기로 회를 뜨고 계시기도 했어요.

남해는 자연이 정말 아름다워요. 저는 등산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남해의 산 위에 올라가면 바다가 사방으로 쫙 펼쳐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요. 그밖에 다 함께 서핑을 하러 가기도 하고, 근처 섬에 놀러 가기도 하며 남해의 자연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논밭에 해가 저무는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숙소 앞 잔디밭이나 해먹에서 누워서 졸다 코딩하다 하기도 하고요. 여유로움을 맘껏 누렸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코딩 교육봉사🏫

@taekkim이 아이들에게 머신러닝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jwon

좋은 기회가 닿아 근처 초등학교에서 교육봉사도 진행했습니다. 남명초등학교는 전교생이 50명 남짓인 작은 학교입니다. 아무래도 시골 학교라 코딩을 접하기 쉽지 않다고 했어요. 학교에서 흔쾌히 저희의 방문을 허락해주어서, 이틀 동안 두 시간씩 3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에게 코딩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기에는 다소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머신러닝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글의 Teachable Machine Learning을 활용했습니다. 3~4명 소그룹으로 모여 앉아, 각자의 얼굴 사진을 수십장에서 수백 장씩 찍어 컴퓨터를 학습시켰습니다. 컴퓨터가 자신과 친구의 얼굴을 구분하는 걸 보며 아이들은 재밌어했어요.

바나나를 먹으려 줄서있는 아이들 / @jwon

수업 말미에는 바나나를 이용한 체험도 했는데요. 컴퓨터가 덜 익은 바나나, 잘 익은 바나나, 너무 익은 바나나의 색을 구분하도록 한 뒤, 각자 바나나를 하나씩 들어 머신러닝으로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한 뒤 먹는 활동이었어요. 집중력이 떨어질 만한 시간인데도 바나나가 등장하니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머신러닝의 원리를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익혀온 것들이 아직 개발자로선 부족할지 몰라도, 아이들과 나누기엔 충분하다고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코딩을 접하기 힘든 학교에 가서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42 서울과 남해 지역의 학교가 연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남명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 @jwon

이런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꽤 주목을 받았습니다. 남해의 신문사인 남해시대, 남해신문과 부산경남 지역 방송사 KNN이 저희가 참여한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취재했습니다. 인구 소멸로 신음하고 있는 지방 도시들이 ‘디지털 노마드’의 발길로 활기를 찾을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이번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강수 사무장님은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 일본 도쿠시마현 카미야마처럼 남해가 한국의 디지털노마드 성지가 됐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남해에 애착이 생겨서 그런지 저 또한 그 이야기가 현실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달의 시간 동안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하게 지내다 왔습니다. 막히는 길 위에 있을 때나, 사람이 많아 마스크를 한시도 벗을 수 없는 곳에선 한적하고 여유로운 남해가 생각납니다. 한달살기 이후에 ‘개발자로서 자리 잡으면 원격근무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생겼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남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니, 조만간 다시 여행하러 가려고요.🏖

죽방렴의 모습 / @jwon